시장조사업체 가트너의 1분기 조사자료에 따르면 세계 파운드리 업체들의 최신 28·32나노 로직 공정의 생산능력은 300mm 웨이퍼 투입 기준 월 45만장 규모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는 전체의 50% 비중인 월 22만5000장의 생산능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파운드리 업계 1위인 TSMC(11만장)보다 두 배 이상 앞서는 것이다.

28·32나노 로직 공정의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은 S1(기흥, 16만장), 뉴R&D라인(화성, 2만5000장), S2(오스틴, 4만장)가 있다. 삼성은 현재 오스틴 낸드플래시 라인(6만5000장, 올해 가동)을 로직 공정 라인으로 전환 중에 있고 화성에 S3(6만장, 내년 가동)를 새로 짓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인 제프리즈는 이러한 가트너의 조사자료를 인용한 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TSMC보다 우위에 있다고 평가했다.

28·32나노 로직 공정 비중이 높다는 건 고객사가 한정적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파운드리 매출은 전년 대비 98% 성장한 43억3000만달러였다. 이 가운데 애플 물량 비중은 8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2만5000장 가운데 20만장 가량을 애플 칩을 생산하는 데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애플이 거래처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겠느냐는 관측에 권오현 부회장이 “소설쓰지 말라”고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가 여기 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은 애플이라는 외줄을 잡고 인수봉을 오르는 것과 같다. 이 외줄이 썩은 줄임이 밝혀질 때 삼성전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TSMC는 올해 최신 로직 공정(20~32나노)이 적용되는 캐파를 기존 11만장에서 16만장까지 확대한다. 대만 중부과학단지 소재 최신 300mm 웨이퍼 공장(팹15)의 월 생산 능력을 현재 5만장에서 10만장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TSMC가 애플로부터 차세대 아이폰에 탑재될 20나노 공정 AP의 수주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최대 5만장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애플 아이폰 판매가 제자리 걸음이라고 가정하면, 삼성전자의 애플 생산 물량도 20만장에서 15만장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대로 삼성전자는 라인 전환, 신규 증설 등을 통해 내년이면 로직 공정 캐파가 지금보다 10만장 가량 늘어난다. 가동 시기를 늦추거나 캐파 조절로 타격을 최소화하겠지만, 어찌됐건 신규 고객 확보 없이 애플 물량이 늘지 않거나, 줄어들면 공장을 놀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엑시노스는 대안이 되지 못한다. 지난해 엑시노스 생산으로 올린 매출액 규모는 3억3400만달러로 캐파 대비 비중이 10%선에 그치기 때문이다.

최신 로직 공정이 필요한 제품군은 AP나 그래픽처리장치(GPU), 베이스밴드(BB),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등으로 한정돼 있다. FPGA는 최근 인텔이 치고 들어온 형국이라 삼성전자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인다. TSMC로부터 퀄컴(AP, BB)이나 엔비디아(GPU), AMD(GPU), 미디어텍(AP)의 위탁생산 물량을 대량으로 뺏어오지 않으면 삼성 파운드리 사업은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나 독자 브랜드의 AP, BB를 생산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고객 영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TSMC는 최신 300mm 시설 외에도 130나노, 180나노의 150mm, 200mm 웨이퍼 공장을 통해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임베디드 플래시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아날로그, BCD 파워, CMOS 이미지센서 등 다양한 제품을 위탁생산하고 있다. TSMC의 고객사는 600개 이상이며 약 1만1000개의 각기 다른 칩을 생산, 공급하고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는 공급망관리(SCM)의 복잡성을 야기한다. 다양한 고객군을 기반으로 나름의 SCM 프로세스를 구축한 이런 회사는 무너지기 힘들다.

취약한 고객기반을 가진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경쟁력이 TSMC보다 앞선다는 제프리즈의 평가는 섣부른 것이다. 걷기 시작한 영재를 보곤 날아간다고 평가한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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