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의 주 재료인 실리콘 웨이퍼의 표준 직경을 현재 300mm에서 450mm로 전환하기 위한 업계의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450㎜ 웨이퍼는 300㎜ 대비 면적이 2.25배 넓어 웨이퍼 한 장에서 뽑아낼 수 있는 칩 수를 두 배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 그러나 450㎜ 반도체 공장을 꾸미려면 거액의 투자금이 필요하고, 실제 공장을 운용할 때도 비용 절감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어 업계의 표준 논의 및 합의가 지지부진했었다.

인텔과 TSMC, 삼성전자(시스템LSI)가 450mm 웨이퍼 전환을 위해 공동으로 연구개발(R&D)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이 같은 웨이퍼 구경 확대에 부정적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대규모 시설투자가 병행되어야 하고 메모리 칩(다이)의 면적이 마이크로프로세서보다 작은 게 이유일 것이다.

이미 10~20나노급으로 선폭이 좁아졌기 때문에 300mm 웨이퍼에서도 충분한 물량을 뽑아낼 수 있다. 인텔 같은 업체는 웨이퍼 구경을 키워 보다 대량으로 칩을 뽑아낼 수 있다면 그에 따른 생산성 향상 효과가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메모리는 다르다. 치킨게임이 끝났다곤 하지만 여전히 4개 업체(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SK하이닉스, 도시바, 마이크론)가 경쟁 중이다. 이들은 대규모 시설투자 뒤에는 필연적으로 ‘공급과잉’(가격하락)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쇼조 사이토 도시바 부사장은 이런 이유를 들어 지난해 12월 일본 현지에서 열린 ‘세미콘 재팬 2012’ 기조연설에서 “(450mm로의 전환을) 가능한 뒤로 미루고 싶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도 웨이퍼 구경 확대 부정적이다. 박성욱 사장은 “450mm 웨이퍼 공장을 하나 지으려면 투자비가 상당히 들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크다”라며 “200mm에서 300mm로 넘어올 때는 미세공정화와 웨이퍼 직경 크기 확대에 따른 물량 증가라는 두 가지 장점이 있었지만 300mm에서 450mm는 크기 확대만 있어 이점도 그리 크지 않다”라고 말했다.


위 장표는 쇼조 사이토 부사장의 당시 발표자료다.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은 매년 떨어질 수 밖에 없고, 가격 하락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원가를 낮춰야만 이익을 남길 수 있다. 파란색 그래프를 보면, 메모리(낸드플래시) 업계는 2012년까지 칩 생산 원가를 그럭저럭 낮춰왔다. 그러나 올해부턴 도전의 시작이다. 빛 파장이 긴 기존 ArF 이머전 노광 장비를 활용해 10나노급 중반대 공정으로 낸드플래시를 만들려면 노광 공정을 여러번 거쳐야 한다. 그 동안은 더블패터닝(2번 노광)을 했지만 16나노 안팎에서는 쿼드러플(3번) 패터닝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공정수가 늘어나면 생산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이는 원가상승을 야기한다. 이대로 가면 되레 원가가 높아진다는 것이 도시바의 설명이다. 다음 장표에서 소개되겠지만 다양한 노력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면 현상유지가 가능하다(노란색 점선 그래프 참조).

내년 말 혹은 2015년 중으로 첫 450mm 파일럿 라인이 돌아가고 2016년 중반께 양산 라인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여전히 생산 원가는 300mm 라인 대비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검정색 점선 그래프 참조). 장비와 재료 가격도 비싸고 웨이퍼 처리 속도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300mm 장비 대비 450mm 장비는 1.5배, 웨이퍼 가격은 5배나 비쌀 것으로 예상됐다. 웨이퍼 구경이 커지기 때문에 노광 공정에 걸리는 시간은 50%, 그 외 공정(확산, 식각, 세정, 테스트 등)은 90%나 늘어난다. 생산성 향상 노력을 하더라도 2019년이나 정도 돼야 비로소 300mm 라인의 원가와 동등해진다는 것이 도시바의 설명이다. 물론, 이 시기는 더 늦춰질 수도 있다.

사이토 부사장은 장비 업체들의 도움이 있다면, 450mm 전환 없이도 메모리 원가를 보다 낮출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장비 개선을 통해 웨이퍼 처리량을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일정 부분 장비 가격이 상승할 수 있지만 이보다 더 강력하게(빠르게) 웨이퍼 처리량을 끌어올리자는 얘기다(파란색 점선 그래프 참조).


현 상황에서 메모리 업체들이 할 수 있는 생산성 향상 작업은 공정 관리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동화에 힘을 썼다면 이제는 장비 고장 혹은 생산성 저하 원인에 대한 가시성을 확보하고 예측력을 높여 웨이퍼 처리량을 높일 수 있다고 도시바는 설명했다.


사이토 부사장은 장비 업체들에게 과감한 혁신을 통해 웨이퍼 처리량을 높여달라고 부탁(?)했다. 평균고장간격(MTBF)은 720시간 이상으로, 예기치 않은 속도 저하 현상은 1% 이하로 낮춰달라는 구체적 요구까지 했다. 장비 가격은 상승하겠지만, 부품 표준화 등으로 이를 억제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인텔의 450mm 전환 의지와 도시바 등 메모리 업체들의 요구를 보면, 장비 업체들은 대응 전략을 잘 세워야 할 것 같다. 인텔, TSMC, 삼성전자(시스템LSI) 등이 향후 시설투자의 열쇠를 쥐고 있는 업체들이지만 메모리 역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중요 고객들이기 때문이다.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병행하는 삼성전자의 대응도 재미있다. 먼저 치고 나가기도,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기 때문에 삼성전자는 450mm 전환에 조심스러운 입장일 수 밖에 없다. 삼성 반도체가 450mm 전환에 대한 사안에서 똑똑한 1.5등 전략을 펼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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