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IT 전문기자들의 미디어블로그 = 딜라이트닷넷]

요즘 네이버와 카카오가 ‘시총 3위’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두 회사가 국내 대표적인 빅테크 기업인 만큼, 여러 분야에서 겹치는 사업 영역도 많은데요.

이번에는 계열사들끼리 약 50억원 규모 공공사업에서 맞붙었습니다. 금액 상으로는 그리 큰 규모가 아님에도 협업할 업체들을 공격적으로 구하는 등 사활을 거는 모습입니다. 여기에 SK C&C까지 합류하면서 IT 대기업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무슨 사업일까요?

◆'미래 화폐'를 위한 기술 전쟁…대기업들이 욕심내는 이유

정답은 한국은행의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모의실험 사업입니다. CBDC는 말그대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화폐입니다. 단순한 기술 용역이 아니라 ‘미래 화폐’를 생각해보게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IT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이죠.

우리가 쓰는 돈이 디지털로 발행된다면 어떨까요? 체크카드에서 현금을 뽑는 대신 휴대폰 속 전자지갑으로 디지털화폐를 입금하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어느 기업의 기술이 사용될지를 그려본다면 대기업들이 욕심내지 않을 수 없겠죠.

물론 한국은행은 “모의실험이 곧 CBDC 발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CBDC 발행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선 언젠가 발행될 수 있는 CBDC에 대비할뿐더러, 기술력을 입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게다가 그 기술력이 미래 먹거리인 블록체인 기술력입니다. CBDC가 반드시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발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 PwC가 발표한 CBDC 보고서에 따르면 CBDC를 검토 중인 전 세계 중앙은행 60여곳 중 88%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합니다.

◆각 참여기업들의 협력업체와 전략은?

그렇다면 각 기업들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을까요? 우선 네이버에서는 계열사 라인플러스가 참여합니다. 카카오에서는 블록체인 자회사인 그라운드X가 참여하고요.

이번 한국은행 모의실험은 컨소시엄(공동계약) 형태로 참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라인, 그라운드X, SK C&C는 각각 주사업자로 참여했습니다. 대신 협력업체들을 뒀습니다.

같이 계약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사업자 기업들과 블록체인 기술을 공동개발하고, 모의실험에 착수하면 결제 분야 등에서도 협력할 수 있는 업체들입니다. 한국은행이 모의실험 공고를 통해 “CBDC의 발행, 유통, 환수, 폐기 등 생애주기별 업무를 처리할뿐 아니라 송금이나 대금결제 같은 서비스 기능도 실험한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업자들은 각각 여러 곳의 협력업체들을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이 업체들이 모두 알려질 경우, 입찰경쟁에서 상대방에게 힌트를 주는 셈이므로 일부만 알려진 상황입니다.

우선 그라운드X는 국내 블록체인 기술기업인 온더와 협업합니다. 온더는 블록체인 확장성 솔루션인 ‘토카막 네트워크’ 개발사인데요. CBDC는 법정화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엄청난 결제량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이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처리하려면 확장성이 충분한 블록체인이 필요합니다. 이런 면에서 온더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그라운드X는 자체 개발한 퍼블릭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을 CBDC용 프라이빗 버전으로 개발하는 방식을 택할 예정입니다. 클레이튼 프라이빗 블록체인 버전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데에는 세계적인 블록체인 기술기업 컨센시스가 도움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컨센시스는 싱가포르, 호주, 태국 등 주요국의 CBDC 사업을 진행한 바 있는 ‘경력직’이기도 하죠.

그라운드X의 협력업체로 알려진 곳들은 다 블록체인 기업인데요. 라인과 SK C&C의 경우 결제기업들만 공개된 상황입니다. 공개된 곳들 외에 협력업체는 더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앞서 언급했듯 다 공개하면 경쟁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일부만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라인은 네이버의 핀테크 기업 네이버파이낸셜과 협업합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네이버페이라는 강력한 결제 서비스와 더불어 스마트스토어를 통한 소비 데이터도 가지고 있습니다. 모의실험 시 대금결제 같은 서비스 기능을 실험하는 데 도움이 될 전망입니다.

또 라인은 CBDC 전용 블록체인 플랫폼인 ‘라인 파이낸셜 블록체인’을 만들어 차별화 포인트를 내세웠습니다. 기존 라인이 개발한 라인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되, 필요한 모듈을 조합해 각 국가 CBDC에 알맞은 블록체인 플랫폼을 직접 구성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CBDC의 결제량을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초당거래량(TPS)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최대 2000TPS로, 기존 금융 서비스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SK C&C도 제로페이 운영사인 한국간편결제진흥원과 협업합니다. 제로페이는 각 가맹점의 데이터를 제공할 예정인데요, 역시 결제사업자인 만큼 모의실험 시 결제 분야에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제로페이 외 다른 협력업체들도 있지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SK C&C 관계자는 “다양한 기업과 협업하나, 경쟁 상황이기 때문에 모두 공개할 순 없다”고 전했습니다.

블록체인 부분에서도 SK C&C가 어떤 플랫폼을 활용할지 확실히 공개되지는 않았습니다. 단 SK C&C의 핵심 블록체인 플랫폼은 지난 6월 컨센시스와 협력해 출시한 ‘체인제트 포 이더리움’입니다. 체인제트 포 이더리움의 가장 큰 특징은 SK C&C가 개발해 특허를 출원한 ‘키(계정) 복구 서비스’로, 블록체인 서비스 사용 시 발생할 수 있는 키 분실 위험을 없앴습니다.

이처럼 참여기업들은 저마다 확실한 전략을 가지고 이번 모의실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누가 ‘미래 화폐’의 주인공이 될 것인지, 결과가 주목됩니다.

[박현영기자 블로그=블록체인을 부탁해]
저작권자 © 딜라이트닷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