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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시행됐다. 법안 시행 이후 통신사 지원금(기기 구매 보조금)에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정한 상한 30만원에 미달하는 기기가 한 둘이 아니다. 상한 적용을 받지 않는 출시 15개월이 지난 기기도 예전보다는 적은 지원금을 책정했다. 방통위 최성준 위원장까지 “보조금이 생각보다 적다”라고 말할 정도니 소비자가 느끼는 박탈감은 더 크다.

<관련기사: 단통법 불안한 첫걸음…대폭 줄어든 보조금에 시장 차분>

단통법이 시행된 지 이제 1주일이다. 통신사 지원금의 적음을 원망하기 전 단통법이 갖고 있는 장기적 목표에 의거해 현 상황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통신사가 지원금을 보수적으로 공시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선 기기변경에 들어갈 비용을 예측하기 어려워서다.

그동안 통신사는 신규 및 번호이동에 대부분의 보조금을 투입했다. 단통법 시행 전 마지막 방통위 제재를 불러온 지난 5월20일부터 6월13일까지 통신 3사는 평균 61만6000원을 보조금으로 썼다. ▲LG유플러스 64만8000원 ▲SK텔레콤 61만5000원 ▲KT 59만4000원 순이다.

기기변경 가입자용 보조금은 SK텔레콤과 KT가 운영했다. 신규 및 번호이동은 통신사를 옮길 때마다 받을 수 있지만 기기변경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통신사를 유지해야 했다. 대상자에게 준 최대 금액은 당시 방통위 가이드라인 27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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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통법은 신규 및 번호이동 가입자와 기기변경 가입자 사이의 보조금 차별을 금지했다. 전 고객 대상 같은 지원금을 줘야 한다. 2013년 기준 번호이동가입자수는 1196만1494명, 전체 이동전화가입자는 5468만840명이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1명에게 줄 돈을 5명에게 나눠주든지 1명에게 주던 돈을 5배로 늘리던지 양자택일이다. 물론 이는 극단적 산수다. 60만원씩 1000만명에 쓰는 것보다 30만원씩 5000만명에 쓰는 것이 돈이 더 깨진다.

더구나 통신사는 기존 가입자 전부를 유지하고 싶지 않다. 돈이 돼는 사람만 유지하고 싶다. 지난 2분기 기준 통신 3사의 가입자당평균매출액(ARPU)은 ▲SK텔레콤 3만6013원 ▲KT 3만3619원 ▲LG유플러스 3만5636원이다. ARPU는 요금제가 아닌 실제 수금액이다. 즉 5만원대 이상 요금제 사용자가 아니라면 버리고 싶은 가입자다. 이들까지 지원금을 주는 것은 피하고 싶다.

섣불리 질렀다가 패가망신할 수 있다. 일단 사용자가 어떤 양태를 보이는지 데이터베이스(DB)를 축적할 필요가 있다. 조금 주다 많이 주는 것은 욕을 덜 먹지만 많이 주다 조금 주는 것은 욕을 더 먹는다. 전자를 택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분리고시 무산에 따른 후폭풍이다.

분리고시는 통신사와 제조사의 보조금을 각각 고지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무산됐다. 삼성전자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가 반대했고 규제개혁위원회가 그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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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은 통신사와 제조사가 함께 조성한다. 애플은 예외다. 애플은 전 세계적으로 제조사 보조금을 쓰지 않는다. 대신 통신사 보조금을 강제한다. 성에 차지 않으면 제품을 주지 않는다. 통신사가 이런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은 애플 제품 사용자 ARPU가 높아서다.

통신사에 따르면 예전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제조사는 통상 통신사 금액을 상회하는 보조금을 투입했다. 팬택 같은 작은 기업과 애플을 제외한 외국계 제조사가 현장판매에 겪었던 것도 그래서다. 단통법 시행에 따라 보조금 눈치를 보는 곳은 통신사만이 아니다. 제조사도 마찬가지다. 현재 공시된 지원금의 거의 전부는 통신사가 부담했다.

제조사가 움직이지 않으면 지원금은 더 올라가기 힘들다. 통신사로서는 억울할 노릇이다. 분리고시 무산은 지원금 불만 여론에 대해 제조사가 통신사 뒤에 숨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줬다.

<관련기사: 보조금 분리공시 무산…부처간·정치적 갈등 비화 조짐>

마지막은 통신사와 제조사의 힘겨루기다.

사실 통신사는 가입자의 ARPU로 먹고 산다. 스마트폰 판매 이익은 부수입이다. 지원금을 덜 풀어 스마트폰 시장이 위축되면 스마트폰 판매 이익은 줄지만 비용도 줄어드니 나쁘지 않다. 지원금이 적으면 스마트폰이 안 팔리는 것이지 통신사 가입자가 떠나는 것이 아니다. 몸이 다는 곳은 제조사다. 제조사의 지원금을 끌어내거나 출고가 인하를 유도하려면 지원금이 적어 스마트폰이 덜 팔리게 됐다는 명제가 성립해야 한다.

단통법의 목적은 모든 사람에게 지원금을 많이 주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투명하게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정보를 주고 지원금 탓에 부풀려진 스마트폰 출고가를 바로 잡는 것이다. 제조사가 지원금도 쓰지 않고 출고가도 내리지 않는 상황에서 통신사만 지원금을 최대치로 지출하면 이 목적은 달성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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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삼성전자 ‘갤럭시노트2’ 등 40만원이 넘는 지원금이 책정된 기기도 있다. 제조사가 통신사만 바라봐서는 나올 수 없는 금액이다. 그러나 시장 정상화라는 단통법의 의의를 생각하면 지원금 40만원 보다 출고가 40만원 인하가 맞다.

한편 단통법이 자리를 잡고 제조사가 출고가를 인하했는데도 통신사가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그 때는 통신사가 비난 받아 마땅하다. 지원금 상향이나 요금인하 요구에 통신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아직 그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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