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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요즘 자주 인용되는 문구다. 1일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시행됐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는 법 시행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제는 정말 보조금이 아니라 고객 우선으로 경쟁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입을 모았다. 또 “단통법 조기 정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말을 믿는 업계 관계자는 거의 없다. 고객 우선이라는 통신사의 말이 언제나 허언으로 끝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포장만 바뀌고 속은 그대로다.

단통법은 소비자가 휴대폰과 이동통신상품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해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과정을 통해 통신사의 요금과 제조사의 출고가 인하를 유도한다. 출고가를 높게 책정하고 보조금을 줘 매출과 판매량을 극대화 하는 제조사와 높은 보조금을 받기 위해 높은 요금제를 선택한 가입자 덕에 가입자당평균매출액(ARPU)을 끌어올리는 통신사의 관행을 규제하기 위한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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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처럼 보조금을 받기 위해 고가 요금제 가입을 강요하거나 부가서비스 유지를 조건으로 내거는 행위는 단통법 제재 대상이다. 통신사가 대리점과 판매점에 특정 요금제 가입자 유치를 지시하는 것도 처벌 대상이다. 그런데 KT가 이를 무력화 할 수 있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내놨다. 바로 심플코스와 베이직코스다. 베이직코스는 정상적 판매 행위와 다를 것 없다. 다른 것은 심플코스다.

심플코스의 핵심은 가입 당시 요금제를 6개월 동안 유지하면 차액정산 없이 아래 요금제로 내려갈 수 있다는 점이다. 발상의 전환이다. 보조금을 더 받기 위해 높은 요금제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선택하게 만들었다.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높은 요금제를 6개월 동안 쓰는 것이니 통신사는 잘못한 것이 없다. 통신사는 6개월 추가 요금을 더 준 보조금과 바꾼 셈이다. 보조금은 비용이고 요금은 매출이다. 이익은 떨어지더라도 매출은 늘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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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자가 심플코스를 택할지는 기회비용 문제다. 얼마를 받기 위해 얼마나 높은 요금제를 고를까다.

일단 지원금 전액을 받기 위해선 ‘완전무한97’ 요금제급에 가입해야 한다. 무제한 요금제 중 가장 낮은 요금제는 완전무한79다. 완전무한79와 완전무한97의 24개월 약정 기준 월 요금차이는 1만6000원이다. 즉 완전무한79에 가입했을 때와 완전무한97에 가입했을 때 지원금 차액이 9만6000원 초과라면 심플코스가 낮다. 그 이하라면 완전무한79를 고르면 된다. 10월 첫 주 KT 공시를 감안하면 심플코스는 별로 매력적이 아니다.

오히려 심플코스는 대리점과 판매점의 족쇄가 될 수 있다. 심플코스는 요금제도 부가서비스도 아니다. 심플코스 가입자를 늘리라고 지시가 내려올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처벌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애매하다. 심플코스는 가입자가 향후 요금제를 올리면 추가 보조금을 못 받는다. 만에 하나 들어갈 수 있는 추가 비용을 없앨 수 있다. 통신사 입장에서 지금으로써는 지원금은 지원금대로 아끼고 미래 비용을 축소할 수 있는 셈이다.

지난 1일 방송통신위원회 최성준 위원장이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을 둘러본 뒤 가진 간담회에서 KT 전인성 대외협력(CR)부문장이 심플코스 얘기를 꺼내자 판매점 대표로 나온 아이파크몰 이동통신상인연합회 방영훈 회장도 이 점을 지적했다. 그는 “고가요금제를 스마트폰 할인 받으려고 가입하는 것과 심플코스가 무슨 차이가 있느냐”라며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다”고 의문을 표했다.

심플코스는 지금은 별 논란이 되지 않지만 추후 문제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원금이 최대치에 다다를 때 가 그 때다. 통신과소비를 줄이겠다는 단말기 출고가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단통법 취지를 무력화 시킬 수 있는 파괴력이 있다. 대리점과 판매점 등 유통망에 대한 통신사의 부당 요구를 막겠다는 의지도 공염불로 끝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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