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미국 드라마)를 즐겨 보시는 분들은 아마 자막을 찾아 헤매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공식적으로 국내에 유통되지 않은 드라마의 경우 자막이 없기 때문에 미드 카페 등에서 비공식 적으로 제작한 자막은 미드 애호가들에게 매우 요용하죠.

최근 워너브라더스를 비롯한 미국 드라마 제작사 6곳이 자막제작자들을 무더기(15개 아이디)로 고소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자막은 원 저작물에서 파생된 2차 저작물로 간주됩니다. 2차 저작물 역시 제작·유포시 원저작자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자막 제작자들은 특별히 수익을 얻으려고 자막을 제작한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은 영어 공부나 취미활동으로 제작한 자막입니다. 자막 제작자들은 아마 저작권을 위반한다는 의식도 없었을 것입니다.

과연 이들에게 엄격한 법의 잣대를 대는 것이 옳을까요. 이에 대해 웹개방 운동을 펼치는 시민단체 '오픈넷'이 "미드 자막제작자 수사는 중단되어야"한다는 성명을 발표해 소개드립니다.

미드 자막제작자 수사는 중단되어야

- 한글자막 읽었다고 영화 안 볼 사람 없어

- 통과 앞둔 저작권 형사처벌 제한법에 어긋나

지난 6월 29일 ‘워너브라더스’와 ‘20세기폭스’, ‘NBC’, ‘ABC’ 등 미국 드라마 제작사 6곳이 자막제작자(ID 15개)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여 서울 서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벌였다. 이들은 NBC의 ‘히어로즈’, ABC의 ‘로스트’와 같은 인기 미드의 자막을 만들어 네이버 카페(‘감상의 숲’, ‘ND24클럽’) 등에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수사는 저작권자들의 경미한 사익을 보호하기 위해 공공자원인 경찰력을 동원하여 공익적인 활동을 하는 자막제작자들을 과도하게 위협하는 것으로서 잘못된 것이다. 

오픈넷은 저작권 형사고소가 사안의 경중에 관계없이 남발되면서 저작권자 보호 효과에 비해 너무 가혹하게 이용자들을 위축시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개정작업을 벌였고(새정치민주연합 박혜자의원 2013. 12. 19 발의 등), 관련 상임위는 저작권침해의 피해가 100만원이 넘지 않는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하지 않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지금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그런데 바로 이 사건에서 자막제작자들은 드라마의 한글자막만을 제작하여 텍스트파일로 공유할 뿐 드라마 영상파일을 무단으로 배포하지는 않았다. 전체 작품 중 극히 일부만을 새로운 언어로 재창조하였을 뿐이다. 전체 작품에서 대사의 의미만 따로 추출한다면 그 비중이 얼마나 되겠는가. 영상파일을 본 사람은 정식방송을 해도 보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한글자막만을 읽었다고 해서 해당 드라마를 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자막파일 자체가 영상파일 저작권자의 시장을 잠식하는 효과는 미미할 뿐이며 1백만원이 넘지 않을 것이다. 위 저작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자막 제작자들은 무죄로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들 자막은 영상파일을 인터넷에 올려 무단 복제 및 배포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은 다운로더들을 유혹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 책임을 자막제작자들에게 지우는 것은 가혹하다. 더욱이 자신만이 보기 위한 다운로드는 불법도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3D영화를 볼 수 있도록 3D안경을 무료로 배포한 사람들에게 3D영화파일의 무단복제에 대해 책임을 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직접침해와 간접침해의 피해를 모두 합쳐봐도, 이들이 과연 공권력을 동원해야 할 정도로 큰 피해를 초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막 제작자를 형사고소한 사례는 전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 이들을 처벌한 사례는 더 드물다. 폴란드에서는 무단으로 자막을 제작하여 사이트(napisy.org)에 올린 자를 경찰이 2007년에 체포하여 조사를 벌였지만 8년이 지난 2013년 5월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게다가 이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런 수고를 했다. 따라서 비록 그것에 일부 위법행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형벌권을 발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팬 문화를 위축시키고 문화의 향상, 발전을 저해하여 부작용만 키울 우려가 있다. 더욱 심각한 범죄들을 단속할 시간에 경찰이 많은 사람들의 언어장벽 극복을 위해 재능기부를 하려는 사람들을 단속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고소를 했다고 알려진 미국드라마 제작사들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생긴다. 자막제작자들은 미국 드라마의 가장 적극적인 팬이다. 자신들은 쉽게 보고 끝날 수 있는 드라마를 그렇지 못한 않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대사번역과 자막작업에 노력과 시간을 들인 것을 생각해보라. 소위 ‘미드’가 한국에서 인기를 끌게 된 것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성장한 팬커뮤니티의 역할과 공유문화의 덕분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 내 미국 드라마 시장은 이들과 함께 성장할 것이므로, 이들과 함께 성장할 방법을 찾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다.

특히, 미국 드라마 제작사들의 고소의사가 진정한 것인지 꼼꼼히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적 규모의 미국 드라마 제작사들이 한국의 힘없는 팬에 불과한 자막제작자를 고소한 것이 그들의 진정한 의사에 따른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한국에서 미국 드라마의 인기는 이들의 재능기부활동에 힘입어 온 사실을 방치해온 저작권자들이, 이제 와서 이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이율배반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진정한 의사였다면 우리는 미국 드라마 제작사들이 조금 더 크고 넓고 길게 생각하기를 바란다. 미국 드라마 제작사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미국 드라마의 적극적인 팬들이 미국 드라마를 더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합법적인 유통채널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미국 드라마가 한국에서 성공하는 길은 미드를 방영하는 케이블TV의 단기적 이익을 보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미국 드라마 팬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2014년 7월 15일

사단법인 오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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