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서 사라졌던 IPE가 ‘행복동행’으로 부활했다.

IPE(Industry Productivity Enhancement, 산업생산성 증대)는 2009년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이 발표한 미래성장 전략이다. ICT, 통신 기술과 이종 산업간의 결합을 통한 신사업 발굴, 글로벌 비즈니스 확대, 협력사와의 상생 등의 내용을 담았다. 2020년 IPE 매출 20조원 달성, 해외매출 비중 50% 이상 확대가 목표였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이후 SK텔레콤에서 IPE는 자취를 감췄다. 당연히 2020년 목표치도 수정됐다. SK텔레콤은 지난해 ‘가능성의 동반자’라는 슬로건과 함께 ‘2020 비전 100&100’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기업가치 100조를 달성하고 글로벌 100대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SK텔레콤의 야심찬 중장기 프로젝트 IPE는 사라졌다. 하지만 사라졌던 IPE 전략은 2013년 5월 ‘행복동행’으로 재탄생했다.

IPE가 지향한 목표나 ‘행복동행’이 추구하는 방향은 비슷하지만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통신, ICT 기술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한다는 기본 골격은 비슷하지만 해외사업의 목표치가 대폭 수정됐고, 융합사업에 대한 시각, 창업지원 전략도 크게 변했다.

SK텔레콤이 2020년을 목표로 세운 장기 전략을 불과 3년여만에 바꾸게 된 이유는 주변 환경이 급격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IPE는 스마트폰 시장이 활성화되기 전인 2009년에 마련된 전략이다.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ICT 생태계 만들어 같이 성장해야 하는 최근의 ICT 시장환경에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하성민 SK텔레콤 사장도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음을 시인했다.

하 사장은 “국내 통신사들은 변화에 앞서갔지만 언젠가부터 변화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했다. 보조금 경쟁에만 매몰돼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경쟁력 있는 업체와 제휴에 소홀했다”고 반성했다.

그는 “일반폰 시대의 월드가든 경쟁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TGIF(트위터·구글·애플·페이스북), 국내 OTT 업체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월드가든에서 최고의 권한을 갖고 있던 시절 마련된 전략으로는 스마트 생태계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창업지원 전략도 단순한 개발, 자금, 인력 지원에서 탈피했다. 아이디어 발굴부터 개발, 사업화, 마케팅까지 이어지는 원스톱 지원 방식을 도입했다. 경쟁력 있는 파트너를 많이 발굴하고 성장을 지원하면 SK텔레콤도 같이 성장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행복동행’ 전략 역시 통신, ICT 환경변화에 따라 또 다시 수정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형희 SK텔레콤 CR 실장은 “IPE라는 단어는 더 이상 쓰지 않는다”면서도 “IPE때 고민하고 잘할 수 있었던 것들, 예를 들면 헬스케어, 교육 등은 지금 더 고도화하고 있다. IPE는 사라졌지만 그 기본은 행복동행에서도 구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장점은 승계해 나가겠다는 얘기다.  

이번에 SK텔레콤이 발표한 ‘행복동행’ 전략은 얼핏 대기업의 사회적 공헌을 강조한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SK텔레콤이 성장한계에 직면했음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갑(甲)’의 횡포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SK텔레콤은 이제 ‘갑’이 아닌 수많은 중소기업, 예비 창업자와 동반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행복동행’ 전략이 성공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과거의 반성을 통해 개선의 여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SK텔레콤의 미래는 지금보다는 더 밝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좋은 전략도 무용지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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