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못지않게 중요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바로 분쟁을 얼마나 매끄럽게 매듭지을 수 있느냐이다. 규제산업 특성 상 사업자간 분쟁도 많을 수 밖에 없는데 이 같은 분쟁을 얼마나 잘 조정하고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 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통신 시장도 사업자간 분쟁, 소송, 비방전이 적지 않지만 방송에 비하면 양반이다. 천문학적인 과징금이나 영업정지 등이 아니면 웬만한 처벌이나 과징금은 통 크게 수용한다. 어지간 해서는 끝까지 가지 않는다.

방송은 다르다. 시장의 크기가 통신에 비해 적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말 그대로 한 번 붙었다 하면 끝까지 간다. 중간에 누가 먼저 양보하는 법이 없다. 규제기관의 압력도 소용없다.

방통위 출범 이후 지상파와 유료방송간 분쟁은 끊일 날이 없었다.

수많은 분쟁 중에서 백미(?)를 꼽자면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지상파와 케이블TV간 재송신 분쟁을 들 수 있다. 여기서 방통위는 정책의 늦장 대응은 물론, 취약한 분쟁조정 능력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올해 초 협상이 결렬되고 케이블방송 업계가 지상파 송출을 중단할 수 밖에 없다고 외쳐도 방통위는 뒷짐만 지고 바라볼 뿐이었다. 당시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은 "협상은 원래 마지막에 이뤄지는 법"이라며 안일한 대응자세를 보였다.

결과는 참담했다. 실제 지상파 디지털 방송 송출이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사업자의 생각과 달리 방통위는 스스로 규제기관의 위상을 너무 추켜세운 셈이었다. 호통 한번이면 해결될 줄 알았지만 생존권이 달린 방송사는 최 전 위원장의 호통이 두렵지 않았다.  

현재 지상파와 계약을 체결한 케이블방송사도 있지만 심각한 갈등을 빚는 곳도 있다. 문제는 재송신과 관련한 분쟁이 매년 반복되고 현재 진행형이지만 관련 법제도 개선은 전혀 진전이 없다는 점이다. 내년 다시 한 번 송출 중단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방통위는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연내 재송신 관련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는 그간 방통위 행보를 볼 때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의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것, 기준을 만들겠다는 얘기는 사실상 지상파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요동을 치는 상황에서 방통위가 지상파에 불리한 결정을 할리 없다는 것이다. 방통위 상임위원회는 여야, 대통령이 추천한 사실상 정치집단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재송신 중단 사태에 대해 상임위원들은 케이블방송사들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파국을 막기 위한 조정, 제도개선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여왔다.

그나마 재송신 중단 사태 이후 직권조정, 재정제도 등 방송유지·재개 명령권 신설 등을 도입해 분쟁해결 방안을 마련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었다.

분쟁 발생시 조정도 중요하지만 분쟁 발생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에는 애써 시선을 회피한 것이 지난 5년간 끊이지 않았던 방송분쟁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눈치 보지 않고 중립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책결정 구조가 필요했다. 방통위 상임위원회는 정치와 독립된 합의제 기구지만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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