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문제 때문에 지금도 불려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 인천 문학구장(SK행복드림구장)을 가끔씩 찾았을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경기 후반 구성지게 울려퍼지는 '연안부두'를 관중들이 즐겁게 따라부르는 것이었다. 승패를 떠나 모두가 최선을 다한 것에 대한 축하와 격려가 뒤섞인 행복했던 기억이다. 
 

한국프로야구(KBO)의 명문구단 SK와이번즈가 26일, 지난 20년간 운영해왔던 야구단을 1320억원에 신세계그룹 이마트에 매각하기로 발표한 것을 놓고 시끌시끌하다.


‘왜 또 다시 인천을 연고지로 하는 야구단이 바뀌냐'는 것이다. 온라인 야구 커뮤니티 등에는 특히 인천 야구팬들의 복잡한 심내와 당혹스러움, 궁금증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코로나19 때문에 흥행이 저조했지만 프로야구는 국내 최고의 흥행 프로스포츠다. SK와이번즈의 이번 매각 발표가 야구 팬들에게는 여전히 미스터리이고 충격적이다.


2000년 3월 창단한 SK와이번즈는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2007년 첫 우승을 포함해 한국시리즈 우승 4회, 페넌트레이스 우승 3회, 포스트시즌 진출 12회를 기록한 신흥 명문 구단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SK와이번즈는 입장문 형식으로 팬들에게 매각 이유를 밝혔다. 물론 그 이유가 쉽게 와닿지는 않는다. “신세계그룹으로부터 SK와이번스 인수 제안을 받고 검토하는 과정에서 신세계 그룹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높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고객들의 일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유통기업의 장점이 프로야구와 만나면 팬 여러분께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는 것이 SK측이 밝힌 야구단 매각 이유다.
 

아울러 “구단 운영권이 이전되더라도 인천을 연고지로 하며 선수단과 프런트 역시 100% 고용 승계된다”고 밝혔다. 


좀 더 시간이 흘러 SK가 프로야구단을 매각한 진짜 이유가 밝혀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현재로선 40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미스터리 중 하나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40년 국내 프로야구 역사, 되돌아본 파란만장한 '인천 야구' 


'인천 짠물 당구' 만큼 유명한 것이 '인천의 짠물 야구'다.  인천 야구는 수비 야구다.  예전부터 인천 지역 연고를 중심으로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에이스급의 출중한 투수들이 많이 배출됐기 때문이다.


현재도 메이저리그 사이영상 후보에 오른 류현진이 인천 동산고 출신이고, 지난해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는 김광현은 안산공고 졸업후  SK와이번스에 입단해 'SK 왕조'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다. 


구한말 개항과 함께 도입된 한국 야구의 역사는 인천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천은 야구에 관한한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될 도시다.


그러나 '인천 야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과소 평가됐다. 이는 아마도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시작된 모질었던 '인천 야구'의 역정이 깊게 투영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SK와이번즈가 다시 신세계로 프로야구단을 매각함에 따라  인천을 연고지로 하는 야구단은 6번째가 된다.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프로야구 역사 40년 동안 연고지 팀이 6번이나 바뀐 경우는 전세계적으로 없을 것이다. 


인천의 라이벌인 대표적인 항구 도시인 부산은 롯데자이언츠가 1982년 원년부터 변함없이 연고지를 지켜오고 있는 것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역사(?),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껴야했던 복잡 미묘한 감정들은 인천 야구의 '찐' 팬들이 아니면 아마도 공감하기 힘들 것이다. 
 

원년부터 지금까지, 지난 40년간 프로야구 역사를 놓고 봤을때, 인천 야구는 전반기 20년과 후반기 20년으로 나뉜다. 


먼저, 전반기 20년은 말 그대로 인천 야구의 흑역사다. 


지금도 회자되는 꼴찌의 대명사 '삼미 슈퍼스타즈'(1982~1985.전반기), 그리고 바통을 이어받은 청보핀토스(1985.후반기~1987), 그나마 제대로 된 골격을 갖추고 인천 야구의 자존심을 찾아갔던 태평양 돌핀스(1988~1995),  뒤이어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 뒤 최강 전력을 단숨해 인천 야구 우승의 갈증을 풀어줬으나 연고지를 서울로 옮기겠다면서 정작 인천 야구팬들에게는 배신의 아이콘으로 낙인 찍히고 사라져버린 현대유니콘스(1996~2007)가 존재한다.


참고로, 현대유니콘스는 서울 연고지 이전이 여의치 않게되자 2000년부터는 인천을 떠나 수원을 연고지로 하다 2007년 해단했다.  따라서 현대 유니콘스의 인천 연고는 (1996~1999) 4년간이다.


그러나 후반기 20년은 '인천 야구 영광의 20년'이다. 

1999년, IMF사태로 도산 위기에 몰렸던 쌍방울이 전주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야구단 쌍방울 레이더스를 해산하자,  SK그룹은 이 과정에서 박경완 등 방출된 선수들중 일부를 영입해 SK와이번즈를 창단한다. 


지금도 일부 야구 팬들 사이에서는 SK와이번즈의 전신을 놓고 '현대 유니콘스다, 쌍방울 레이더스다'를 놓고 갑론을박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현대, 쌍방울 두 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SK와이번즈는 2000년에 출범한 신생팀이다.
   

◆ “인천 야구를 위해 애쓴 SK, 떠나서 아쉽지만 고맙다”


SK와이번즈가 창단된 이후 인천 야구는 영광을 되찾았고, 결국 'SK 왕조'라는 자긍심 가득한 업적을 쌓았다. 


그리고 2000년3월 창단 이후 20년간 한번도 연고지 팀이 바뀌지 않았다. 더구나 국내 어느 지역보다 야구장 인프라도 최첨단 현대식으로 개선하는데 앞장섰다. 패밀리 테이블을 비롯해 각종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한국 프로야구 팬서비스 품질의 상향 평준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천 야구팬들이 이번 SK와이번즈의 매각 발표를 당황스럽고, 충격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래도 SK에 대해 비난을 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SK가 인천 야구를 위해 투자도 많이했고, 충분히 만족할만한 성적을 냈으며. 세심한 팬서비도 뛰어났다는 점을 두루 두루 인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설명> SK와이번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성근 감독(좌), 외국인 감독 최초로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힐만 전 감독.


과거 인천 야구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야신' 김성근 감독과 결별하는 과정에서의 불협화음도 있었지만 이후 야구에 대한 투자의 진정성을 보여주면서  상황을 매끄럽게 마무리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부분이다.


SK그룹이 야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는 것과 관련,  SK그룹 계열사 직원들은 대체로 아쉽다는 반응이다.  SK와이번즈가 그룹 홍보에 얼마나 많은 이익을 줬는지는 모르지만 스포츠가 주는 꾸밈없는 감동,  또 20년 역사가 켜켜히 쌓여있는 스토리,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 이런 소소하지만 소중한 기억들과 작별해야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기업 문화가 완전히 다른, 유통기업 신세계 이마트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SK와이번즈가 지난 20년간 세운 인천 야구의 자존심과 영광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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