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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마다 올림픽이 열리지만 더 이상 금메달 결정전에 손에 땀을 쥐며 열광하지 않는다. 또 어떤 종목은 그저 최선을 다한 모습만으로 큰 감동과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국내에선 OST로 더 유명한 영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 1981년 작)는 영국 휴 허드슨 감독의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처럼 외국 영화로는 드물게 1982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역작이다. 처음엔 스포츠 영화인줄알고 보았지만 종국에는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었을때 느꼈던 것과 같은 큰 울림을 받았다.

영화는 1924년에 열렸던 파리 올림픽이 배경이다. 1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아직 채 가시지 않았던 엄혹한 열강의 시대, 선수들 가슴 팍에 달려있는 국기의 무게는 지금과는 달랐다. .   

영국의 육상 대표 선수로 선발된 두 청년이 주인공이다. 한 사람은 고리대금업을 하는 유대인 집안 출신의 청년 해롤드 아브라함, 또 한 사람은 스코트랜드 출신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에릭 리들이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주류사회로 부터 차별과 멸시를 받고 자란 헤롤드에게 금메달은 국위선양 이상의 간절한 무엇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따고 싶었다. 이 과정에서 아랍계 명 트레이너인 무사비니를 만나고 그를 개인 강사로 고용하는 무서운 집념을 보인다. 무사비니 역시 육상계에선 철저히 소외된 비주류였다. 헤럴드는 10초6의 기록으로 100M 금메달 차지했다. 그것은 무사비니의 금메달이기도 했다.

반면 선교사를 꿈꾸는 에릭은 타고난 100 미터 스프린터였다. 실력은 헤롤드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올림픽 금메달은 그가 믿는 신앙의 영광을 역사하는 과정일뿐이었다. 실제로 에릭은 올림픽 기간중 일요일에 벌어지는 100미터 육상 예선전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폭탄 선언을 한다.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의 보이콧 선언으로 영국은 왕세자까지 날아와 설득하지만 그래도 에릭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며 참가하지 않는다. 물론 영국 대표단은 에릭의 일정을 바꿔 일요일이 아닌 평일에 열리는 400미터 종목에 출전시켰고, 그는 주종목이 아님에도 금메달을 목에 건다.   

누구에겐 올림픽 금메달이 자신의 가슴속에 맺힌 억울한 삶을 보상해줄 그 무엇이지만, 또 다른 누구에게는 안식일을 방해받으면서까지 쟁취해야할 만큼 가치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 옳은 것일까.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기준은 달라지지만 옳고 그름, 선과 악의 문제는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자막이 올라갈때쯤이면 그래도 누가 더 가치있는 삶을 살았는지, 나는 또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다짐할 뿐이다.. 

올림픽이 끝난후, 두 사람의 행적도 예상했던 대로다. 에릭은 1930년 중일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그렇게 원했던 중국으로 선교 활동을 떠났고, 1945년 일본군 교도소에서 병사했다. 반면 헤롤드는 영국의 육상협회장 등 원로로 활동하다 1978년에 타계했다. 헤롤드는 그가 원했던 주류사회에 편입됐다고 생각했을까.   

지난 24일 저녁,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토마스 바흐 IOC(국제올림픽위원회)위원장간의 전화 통화로 '2020 도쿄 올림픽'이 공식적으로 1년 연기됐다. 그리스에서 모셔온 성화는 동일본 대지진의 진앙지 후쿠시마로 옮겨졌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올림픽 개최가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끝까지 일본은 개최 가능성을 끝까지 열어둠으로써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이 올림픽 연기를 공식화하자마자 도쿄(東京)의 코로나19 확진자가 평소의 2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올림픽 개최 국제적 여론을 우호적으로 이끌어내기위해 그동안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최대한 억제해 왔다는 의혹이 기정사실화됐다. 

'신뢰의 상실'은 일본이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여야할 부분이다. '2020 도쿄 올림픽'을 통해 동일본 대지진을 극복하고, 개선된 경제지표를 내세워 총리 연임과 함께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개헌하려했던 아베 총리의 계획은 좌절됐다. 

이쯤에서 영화 '불의 전차'를 반추하면서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올림픽은 자국민의 건강, 공동체의 안녕을 무시할만큼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일본은 태평양전쟁 패전을 치유하기위해 1964년 도쿄올림픽을 개최했다. 벌써 56년이 흘렀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올림픽을 연기하는 과정을 보면서 일본의 시대 정신이 진화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여전히 올림픽이 연기된데 따른  경제적 손실을 따지기에 바쁘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세계의 모범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그래서 더 돋보인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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