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보면 가끔씩 현실이 꿈보다 더 몽환(夢幻)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코로나19 때문에팬데믹을 겪고 있는 요즘이 그렇다.   

평소 가격조차 제대로 모를 정도로 신경쓰지않았던 마스크를 사기위해 약국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풍경은 볼때마다 낯설다. 그것도 자신의 태어난 해의 끝자리를 따져가면서.

알람 시계가 야속했던 아침 일상은 어느덧 재택 근무로 바뀌어있다. 일과 업무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불편하다지만 그건 그냥 하는말이고, 출퇴근에 시달리지않은 삶 또한 얼마나 해보고 싶었던 일인가.

그리고 이제 '코로나19'의 나비효과로 시작된 또 하나의 몽환적인 이벤트가 곧 시작될 예정이다. 

다름아닌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이벤트. 실물 경제가 워낙 급격하게 얼어붙다보니 헬리콥터를 타고 돈을 뿌리면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극약 처방이다. 

기존의 시장 매커니즘에 맡기지 않고, 곧바로 국민들에게 '구매력'을 쥐어줌으로써 단기간에 경제를 회복시키는 정책이다. 
 
돈을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붇는다고해서 '화폐우(貨幣雨)'라는 표현을 쓰지만 '헬리콥터 머니'(Helicopter Money)라는 표현이 일반적이다. 1969년, 미국의 경제학인 밀턴 프리드먼이 하늘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1000달러 지폐를 뿌렸을때 시장 실물 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설명하기위해 사용하면서 유래됐다.

어쨌든 마치 인공강우를 만들듯이 억지로라도 비를 만들어 해갈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데, 사실 그 정책적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도 갑론을박이 있다. 시장에서의 통화량과 통화의 유통 속도, 소득/소비가설 등 매우 복잡한 요인들을 고려해봐야 하기때문이다.   

◆국민들에게 직접 현금을 쥐어주는 미국 방식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인에게 1인당 1000달러 (자녀는 500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미국은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경기를 살리기 위해, 당시 버탱키 FRB(연방준비제도)의장이 이 '헬리콥터 머니'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행한 경험이 있다. 

미국 정부는 미국인들이 1000달러의 현금을 손에 쥐었을때 곧바로 소비에 나선다는 경험칙을 믿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카드를 꺼내들었을때 실제로 연일 급락하던 미 증시도 이 발표가 나오자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헬리콥터 머니는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 주요 국가들도 초대형 경기 부양책을 마련하고 있다.'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전세계적으로 총 3조달러(한화 약 3600조원)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더 늘어 날수도 있다. 미국이 경기부양에 1200조원을 투입하는 것을 비롯해 독일은 6878조원,  영국은 496조원, 스페인은 274조원 규모로 책정했다.   

◆이제는 오히려 현금이 익숙하지 않은 한국... 어떻게 뿌릴까 = 우리 나라도 이제 '화폐우'의 본격적인 실행을 앞두고 있다. 최근 국회에선 11조7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통과시키는 등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된 상황이다.

주요 지자체장들은 지급해야할 '화폐'(구매력)의 수준과 지급 대상 범위를 놓고 정부 당국과 실행방안을 조율중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중위소득이하의 시민들에게 재난긴급생활자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재난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조만간 국민들은 화폐(구매력)를 지급받게된다. 단,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지지 않기위한 다양한 방안이 강구되고 있다. 참고로, 화폐를 '현금'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구매력' 또는 '유동성'으로 표현하는 것은 화폐를 역할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유동성 함정'이란 본래 화폐를 시장에 공급했는데도 이자율이 떨어지지 않는 현상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화폐를 쓰지않고 저축할수 있어 소비를 통한 경제활성화 정책의 효과가 증발해버리는 상황을 의미한다. 

정부 '헬리콥터 머니' 정책의 실질적인 고민은 아마도 이 지점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유동성 함정을 회피하기위해 국민들에게 현금을 바로 지급하지않고 상품권(또는 지역상품권), 쿠폰(사용권), 모바일화폐 등 현금을 제외한 화폐(구매력)를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상품권, 쿠폰 등을 지급한다고해도 이를 10~20%로 할인해서 현금화해버리는 상황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한다. 이른바 '깡'을 통해 얼마든지 현금화할 수 있다.   

또한 그동안 대형 마트나 온라인 구매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지역 상품권을 받았다고 해서 일부러 전통 시장을 찾아갈 것으로 기대하기가 쉽지않다.

개인의 스마트폰이나 모바일에 디지털화폐를 충전시키거나 구매력을 충전시켜주는 선불카드 방식을 통해 온/오프라인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정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물론 이같은 디지털 화폐 지급방식도 결제 편리성은 뛰어나겠지만 엉뚱하게 지역 상권을 살리는 상품구매가 아니라 사치재 등을 사는데 써버리면 이 역시 정책의 취지를 온전히 살린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결제 용도를 엄격하게 '중소상공인 전용'으로 한정시키고, 소비자들이 이를 편리하게 이용하기위한 유통 체인과 전자상거래 인프라를 세심하게 손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늘에서 돈을 뿌리는 방식은 고통을 잠시 잊게해주는 진통제일 뿐이다. 결코 자주 사용할 수는 없는 정책이다. 결국 제대로된 시장 매커니즘에서 노동과 자본이 투입된 '실물 경제'가 돌아야만 정상화된 사회로의 복원이 가능하다. 

현재로선 그 정상화의 시간이 어느정도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왕 '헬리콥터 머니'를 띄우기로 결정했다면 화폐 비가 골고루 뿌려질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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