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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표적인 금서로 낙인찍혔던 정감록(鄭鑑錄)은 비결(秘訣), 또는 비기(秘記)등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할 뿐 정작 '정감록'이란 타이틀로 된 책은 없다. 그런 류의 책들을 정감록으로 인정할 뿐이다.

정감록에 '10승지(勝地)'라는 말이 등장한다. 전쟁과 같은 환란시에 몸을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전국의 10곳을 의미한다. 경북 영주와 봉화, 충북 보은, 전북 남원, 경남 가야산 등 이다. 실제로 6.25 전쟁 당시 이곳으로 피란을 온 사람들이 적지않았다고 한다. 난리때 목숨을 보존할 수 있는 생존지를 가르쳐 준다는 것,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한다면, 외적과 맞서 싸울 사람들은 다 없어지고 국가의 존립은 위태로워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감록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헌신과 자기 희생은 들어있지 않다. 정감록이 결과적으로 금서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조선시대 또 다른 비결서로 '토정비결'이 있다. 요즘은 토정비결 앱이 나올 정도로 흔하다. 디지털 시대에 점괘를 본다는 게 역설적이지만 그렇다고 '오늘의 운세'에 목숨거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조선 중기, 토정비결이 처음 나왔을 당시에는 매우 정확했다고 한다. 예측이 너무 정확해서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확산됐다. 

결국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너무 정확하다보니 사람들이 차츰 운세에 의존하게 되고, 근로 의욕도 상실하는 등 사회 문제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 운명론적 가치관이 지배하면 그 사회의 활력은 급속히 떨어진다. 결국 토정 이지함은 '토정비결'의 정확성을 일부러 낮췄다고 전해진다. 믿거나 말거나식으로 토정비결의 수준이 다운 그레이드된 사연이다.
만약 정감록과 토정비결이 실제로 정확했다면 당시로선 놀라운 '혁신'의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정교한 빅데이터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도 그것이 지향하는 사회공동체적 가치가 무엇이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져야 한다. 혁신이 항상 직진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의 진화가 멈추는 것도 아니다. 

◆기술의 혁신, 무엇을 지향하느냐 

네비게이션은 그 사회적 효익이 저평가된 대표적인 IT 혁신 제품중 하나로 손꼽힌다. 단순히 길을 안내하는 IT 장비에 그치지 않는다. 목적지를 정확하게 찾아가도록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자동차 연료 소모를 최소화한다. 경제적이다. 또 혼잡도로를 우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공회전 비용을 줄여 엄청난 매연 공해를 감소시킨다. 매우 환경친화적이다. 

최근 공유경제서비스 모델인 '타다' 를 둘러싸고 혁신 논쟁이 한창이다. 급기야 검찰의 기소로 법정에서 혁신성을 검증받기에 이르렀다. 결론부터 말하면, 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나더라도 그것이 혁신성의 진위를 판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갈등이 봉합될 가능성은 적다. 

공유경제 모델 대부분이 그렇듯 '타다' 논쟁도 사회적 공감대가 성숙되기전에 갈등으로 표출된  사례다. 1차적으로, '타다'서비스는 기존 택시 시장의 파이를 수평이동 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혁신적 기술이 적용됐다고 하지만 결국 본질은 누군가의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과 동일해지는 제로썸(Zero Sum) 게임이라는 것도 엄연한 현실임을 인정해야 한다. 

결국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하나의 원칙이 필요한 시점이다. 매우 어려운 작업이지만 혁신이 가져올 사회 공익적 가치를 계량화하거나 그에 준하는 기준을 만들어 가야할 시기가 왔다.
 
◆혹시 우리는 '혁신 만능주의'에 빠져 있지 않는가 

규제(전봇대)를 없애면 기업활동이 활성화되고, 궁극적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며 국부가 증가한다는 논리는 사실 논리일뿐이다. 과거 대기업을 지원하면 일자리가 많아진다는 '낙수효과'가 실제로는 대기업의 몸집만 키우고 수많은 하청업체들은 여전히 고통을 받는 상황을 개선하지 못했다. '규제 혁신'의 정책 효과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이패스' 톨게이트가 운전자에게는 편리하지만 그것이 수많은 톨게이트 요금 징수원을 구조조정 할 과도할 필요가 있는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바코드 인식 기술을 이용한 무인계산대가 혁신적이지만 전국 대형마트의 수많은 캐셔들을 대규모로 정리해야할 정도로 빨리 늘려야 할 가치가 있는지는 고민해 볼 문제다.

또 최근 기업에서 활발하게 도입하고 있는 로봇(RPA)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인간 대체 기술은 과연 어디까지 역할 경계선을 그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혹시 어쩌면 우리는 '탐욕'을 '혁신'으로 위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혁신에 대한 정책 철학, 사회적 인식의 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공유경제 모델을 필요이상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할 수 밖에 없다.

'과연 혁신 기술은 인간을 지향하고 있는가'.
'혁신 기술은 공존의 철학을 지향하고 있는가' 

이러한 철학적 고민없이 '규제를 풀어주지않으면 4차 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협박이다. 새롭다고해서 혁신이라 정의하고, 그것을 절대 선으로 전제하는 것은 위험하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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