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국내에선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간의 만남 소식이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내용 때문이다.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에 있는 트럼트 소유 골프 클럽에서 팀 쿡 CEO와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팀 쿡 CEO는 트럼프 대통령에게‘삼성은 관세를 내지 않고 있다’고 말했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도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대응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 

그런데 사실 우리로서는 '관심'보다는 '우려'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때때로 트럼프 대통령은 기괴할 정도의 상상력을 발휘했고, 그것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특히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트럼프로서는 상상력의 범위를 파격적으로 넓힐 가능성이 높다. 지난 6월30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 제안을 통해 불과 하룻만에 판문점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사실상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을 갖는 파격을 보였다.

팀 쿡 애플 CEO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 얘기를 꺼내면서 굳이 삼성을 언급한 이유는 분명하다. 10%의 관세부과가 결과적으로 애플처럼 중국에서 제조시설을 가동하고 있는 미국 회사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함으로써 한국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얻게된다는 논리다. 한국은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기때문에 농산품 등 일부 특정 물품을 제외하고는 대미 수출 관세율이 0%이다. 

팀 쿡 CEO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트럼프 대통령도 이같은 백악관 참모들의 주장에 일단은 동의한듯 보인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중국에 대한 10% 추가 관세부과 조치와 관련하여, 휴대전화와 크리스마스 관련 용품 등 총 1560억달러(약 189조원) 규모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오는 12월 15일 이후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9월1일부터 시행하려된 것을 3개월 정도 늦춘 한시적 유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혹시 예상치 못한 엉뚱한(?) 대응책을 내놓을 가능성은 없을까.

현실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대한 10%의 관세 부과를 전격 철회하지 않는 한 팀 쿡 CEO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만약 관세이외의 방법(?)이 동원된다면 거기에는 우리가 우려하는 기괴한 방법이 포함될 수 있다. 좀 황당하긴하지만 이것과 관련한 몇개의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1.중국에서 제조하는 미국 기업들의 제품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관세부과 철회? = 이를테면 애플과 같이 중국내에 제조시설을 갖춘 미국 기업에 대해서는 선택적으로 관세부과를 면제할 수 있을까. '화웨이와 같은 중국 국적의 기업은 못믿겠지만 미국 기업은 신뢰할만하기때문에 관세부과 면제가 타당하다'는 그럴듯한 논리를 끌어온다. 그러나 이는 존재하지 않는 무역규범이다. 만약 미국이 이것을 실행해옮겼다가는 세계 무역시장은 대혼돈에 빠지게 된다. WTO체제의 기본원칙인 호혜주의에 대한 정면 위반이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WTO의 원산지 규정을 자기 입맛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전세계에서 교역되는 모든 제품은 그 제품이 생산된 국가의 원산지를 절대 바꾸지는 못한다. 애플 제품의 성능과 무관하게 중국에서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Made In China'이다. 즉, 중국산이다. 따라서 애플 제품만 별도로 관세가 면제되는 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 

다만 미국 정부가 특정 소비재의 물가상승 우려 등을 고려해 휴대폰 등 특정품목에 대해서는 관세를 선별적으로 면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미국 회사뿐만 아니라 타국의 제품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관세 면제 혜택을 적용해야 한다. 

2.삼성전자에게도 10%의 관세 부과? = 애플에게 부과된 10%의 관세는 그대로 소비자 가격에 전가된다. 졸지에 애플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 결국 애플의 입장에서는 강력한 경쟁사인 삼성의 휴대폰에도 10%의 가격인상 요인이 있어야만 불리함을 상쇄시킬 수 있다. 

미국이 삼성 제품에도 10%의 관세를 부과시키는 시나리오가 있으면 된다. 그러나 기존 한-미 FTA협정을 파기시키지 않는 한 이 역시 현실성은 제로에 가깝다.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삼성전자 제품만 콕 찝어서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3.관세내기 싫으면 생산을 미국에서 해라?,,,애플이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는 방법 = 애플이 미국에서 제품을 제조하면 이런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나마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생각되지만 역시 무리다. 애플의 입장에선 미국내 높은 인건비 등 생산비용때문에 이를 실행에 옮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냥 10%의 관세를 내고 기존대로 중국에서 생산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다. 중국, 인도, 멕시코 등 세계 저임금 국가로 빠져나간 미국의 제조 기업을 미국으로 유턴시켜 미국을 예전과 같은 제조강국으로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은 여전히 환타지다. 

4.눈에 보이지않는 공격, 비관세장벽(NTB) 전략의 활용? = 사실 가장 우려되는 부문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 방식을 그동안 폭넓게 활용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굳이 복잡한 '비관세장벽'을 활용하는 것보다 간단하게 힘의 논리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에 익숙해있다. 

비관세장벽(Non-Tariff Barriers, NTB)은 말 그대로 '관세' 이외의 행정절차 등을 무기로 활용해 수입국과의 교역에서 자국 제품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식을 의미한다. '비관세장벽'은 은밀하면서도 정교하고, 방법 또한 다양하기때문에 상대국에서 직접적으로 문제삼기가 어렵다. 또한 WTO에 제소하더라도 시간이 오래걸린다. 

최근 일본이 뚜렷한 명분없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우대국)에서 배제하는 것도 이같은 비관세장벽의 일종이다. 합법적인 틀의 형식을 갖춰놓고 수입절차를 까다롭게 하거나 통관절차를 지연시키거나 인증절차를 늘리는 등의 방법이 동원된다. 이러한 '비관세장벽'이 작동되면 수출기업은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나 크리스마스 특수를 놓칠 수도 있다.

1~4개의 시나리오중에서 현실적으로 걱정해야될 시나리오는 예측이 쉽지않은 '비관세장벽'이다. 팀 쿡 CEO와 트럼프 대통령간의 대화가 신경이 쓰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중 간의 무역갈등이 해소되면 이같은 우려가 불필요하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비록 가능성이 낮더라도 만일의 상황에 철저하게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에서 얻어야할 교훈이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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