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분석되고 해석되는 빅데이터 시대다. 특히 빅데이터로 분석된 데이터는 인공지능(AI)기술과 결합돼 훨씬 큰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바둑에서 뿐만 아니라 이제는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의 능력치를 뛰어넘는 '괴물'로 속속 진화되고 있다. 로보 어드바이저의 자금운용 수익률이 인간을 앞서는 사례가 속속 나온다.


하지만 그럼에서 불구하고, 여전히 과학적으로 도저히 분석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영역이(?) 인간에겐 존재한다. 방대하고 정교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도 때로는 인간이 가진 특유의 직감 또는 직관을 당하지 못한다. 

물론 그러한 '직관'이나 '직감(Intuition)'도 따지고 들어가면,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인간에 대한 독특한 경험칙에서 출발한 것일지 모른다. 예를들면 인간이 인간과 사물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과 같은 것이다. 이는 어쩌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일지 모른다. 

# 어느 중소형 금융회사의 놀라운 리스크관리 '신공'

 

거의 20년전 얘기다. 서울 강남의 한 신용금고(현재는 '저축은행'으로 개명)에서는 독특한 영업방식(?)을 앞세워 주위 경쟁사들보다 알찬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저축은행은 대개가 거점 지역의 상권을 대상으로 영업을 한다. 거점 지역의 고객 특성에 따라 저축은행들의 영업방식도 천차 만별이다. 어떤 지역의 저축은행은 직원들이 거의 일수 가방들고 시장을 돌아다니기도하고, 또 어떤 지역은 시중 은행의 지점과 크게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 강남의 저축은행에선 다른 저축은행들과는 달리 '무담보 소액 신용대출에서 상당한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무담보' 대출은 리스크가 큰 상품이다. (지금은 고객의 사전동의하에 페이스북과 같은 SNS상의 평판을 조회해 신용평가 점수를 산출하고 금리를 결정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저축은행은 이러한 고객분석 도구도 없이도 무담보 소액 신용대출 분야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거뒀다. 

 

다소 황당하게들리겠지만 그 비결은 단순히 대출담당자의 '직관'과 '직감'(Intuition)에 있었다. '직감'은 사물이나 현상을 접하였을 때에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아니하고 진상을 곧바로 느껴 앎. 또는 그런 감각으로 정의된다.

 

이 저축은행에선 주로 21세~25세 전후의 '젊은 여성'을 주 고객대상으로 설정하고, 300만원 미만의 신용대출 상품을 취급했다. 물론 '젊은 여성'이란 표현에는 '예쁜' 이라는 형용사는 생략됐다. 즉, 이 저축은행은 강남에 살고 있는 예쁘고 젊은 여성들은 300만원 정도의 대출금을 떼어먹지 않는다는 일종의 직관을 가지고 굳게 믿었고 실행에 옮겼다. 이 직관이 정말로 합리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성과는 좋았다.

 

'강남 거주, 21~25세의 예쁘고 젊은 여성'이란 사실에서 이 저축은행이 유추해낸 리스크관리의 근거들은 나름 그럴듯했다. 

 

예를들면 이렇다. 먼저, '강남에 살면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 집의 딸이다'(언제든 부모가 변제할 능력이 된다.) '21~25세의 여성이면 미용, 쇼핑 등으로 가장 소비욕구가 왕성하지만 아직 직장이 없는 경우가 많아 은행 대출은 까다롭다'(고객 유치가 쉽다), '21~25세의 젊은 여성이라면 아직 미혼일 경우가 많고, 남자 친구가 변제해 줄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다.'(만약 강남의 유흥업소에 일하는 젊은 여성이라도 300만원은 변제하기에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다.) 

 

또 이 저축은행은 특이하게 길거리 노점상을 대상으로도 활발하게 무담도 신용대출상품을 판매했다. 역시 결과적으로 성과는 괜찮았다. 번듯한 가게가 있는것도 아닌 노점상에게 신용대출을 해 준 이유 역시 황당하지만 '노점상은 대출금을 떼먹지 않는다'는 이 저축은행 CEO의 현장 경험, 특유의 직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당시 이 저축은행은 노점상이 비록 힘든 상황에서 장사를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의 대출금은 대체적으로 꼬박 꼬박 잘 갚는다는 것을 믿었다. 정확한 통계치는 낼 수 없었지만 이 저축은행의  CEO는 '노점상들은 일반적으로 남의 돈의 떼먹지 않는다. 착하다'는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힘들게 돈을 번 사람들은 남의 돈도 소중하게 생각할 것 이라는 자신의 논리에서 출발했을지 모른다. 

 

지금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당시 저축은행의 CEO는 "물론 소액신용 대출도 사고가 발생하긴하지만 일반 시중 은행의 신용대출 사고와 비교해볼때 훨씬 더 적은 수준"이라고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의 직관과 직감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분석과정이 생략됐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인간의 직관과 직감을 과연 비논리적이라고 평가절하할 수 있을까.

 

올해 국내 금융권에서는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구축이 활발하게 이어졌다. 주요 은행을 비롯해 2금융권에서 의미있는 시스템 구축 작업이 실행에 옮겨졌다. 단일 프로젝트는 100억원이 훌쩍 넘는 곳도 있었다. 데이터를 정비하는 것과 데이터 분석 프로세스를 획기적으로 빠르게 함으로써 고객 응대를 신속하게 하기위함이다. 

또한 시스템 구축 뿐만 아니라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 전문가를 외부에서 수혈하고 있다. 은행, 카드, 보헙, 증권 등 금융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비대면채널 시대로 접어들면서 '데이터에 의한 비즈니스 프로세스', '인공지능에 기반한 혁신적인 비즈니스 서비스' 모델이 더욱 중시되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은 2018년에도 금융권의 최대 현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앞서 예를들었던 것처럼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금융인 특유의 직관과 직감에 의한 성과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예쁘다'는 것과 '착하다는 것'...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과연 식별해 낼 수 있을까 =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빠지면 이제 얘기가 안되는 시대다. '홍수'라고 표현될 만큼 거의 모든 것이 이 두 단어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아직까지 '인공지능'이라고 표현할만큼 놀라움을 주는 것은 개발되지 않았다. 

20년전, 이 강남의 저축은행이 신용대출시 판단의 근거로 했던 직감적 근거는 '예쁜 젊은 여성'이었다. 여기에서 '예쁘다'는 직관적 판단은 아직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심지어 '착하고 예쁜'이라는 두 가지의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판단 요소까지 곁들어질 수 있는데, 역시 이는 사람만이 가지는 직관의 영역이다. 그리고 이는 대면, 즉 스킨십의 영역이다. 

실제의 일상 생활에서 이처럼 인간만이 가지는 직관의 영역은 꽤 광범위하다. 역으로 이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영역은 아직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인공지능이 정말로 진(眞), 선(善), 미(美) 즉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 착함과 악함을 구별할 수 있다면 물론 더 이상 기계로 불려서는 안될 것이다. 


얼마전, 국내 한 카드사는 통신요금 납부와 카드 연체율의 상관관계를 통계치로 공개한 바 있다. 통신요금를 제때 잘 내는 사람들은 카드 연체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럼 이를 근거로 카드사는 통신요금을 잘 내는 고객에게 대출을 마음놓고 해도 된다는 얘기일까. 또한 SNS상에서 '좋아요'를 누른 숫자로 '착하다'는 신뢰는 어느선까지 인정해야 할까. 

지금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이 고작(?) 이 수준에 불과하다.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맹신으로, 어쩌면 인간이 가진 특유의 직관 또는 직감을 너무 쉽게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점을 우려한다. 

참고로, 이 저축은행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소액 신용대출이 아니라 리스크관리에 항상 만전을 기했던 기업 대출에서 부실이 발생했고, 그 충격을 극복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아쉽다. 

 

<박기록 기자 = IT와 인간(人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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