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장이 칼춤을 추는 의도는 패공을 해치려는 데 있다’는 뜻인 ‘항장검무 의재패공(項莊劍舞 意在沛公)’.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최근 한반도 '사드' 배치에 반발하면서 언급한 고사다.
 
'사드 배치로 북한의 핵을 방어하겠다는 것은 기만이고, 진짜 의도는 미국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다.  

중국의 인식이 이렇고, 사드 배치 결정이 백지화되지 않는 한 중국의 대응은 어떤식으로든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것이 우리 경제에 미칠 후폭풍이다. 그리고 또 그 후폭풍의 강도는 어떤 수준일까하는 점이다.

화장품,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선 이미 보이지 않는 중국의 보복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코스피시장에서는 관련 업계의 주가가 크게 출렁였다. 실제로 LG생활건강 등 화장품과 엔터테인먼트 관련주가 크게 하락하기도 했다.

왕이 외교부장이 인용한 고사를 너무 민감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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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 관리들이 인용하는 고사에는 반드시 품고있는 의미가 있기때문에 전후 맥락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언중유골, 즉, 말 속에 깊은 의미를 시사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세객'이란 표현이 있듯이 중국은 외교적 언사에 매우 민감한 역사를 가졌다.

그렇다면 앞으로 중국의 행보를 예측하려면 왕 외교 부장이 언급한 '홍문의 연회'와 관련한 당시 전후 상황을 좀 넓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홍문의 연회'는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공동의 적인 진나라를 제압한 뒤 천하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과정중 비교적 초기에 생긴 사건이다.

한-초 경쟁 초기, 초의 항우는 한의 유방을 압도하는 군사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초나라는 현재 양자강 이남 지역을 근거로한 지역인데, 대체적으로 중국 역사에서 이 지역 출신 인물들은 일일히열거하기 벅찰 정도로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항우는 유방을 번번히 놓아준다. 항우는 카리스마가 전혀없는 유방을 아예 자신의 상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우를 위협할 유일한 대항마로써 유방의 능력을 제대로 꿰뚫어본 유일한 사람은 항우의 책사 '범증' 뿐이었다

홍문의 연회를 기획한 것도, 항우의 수하인 항장에게 칼춤을 추게하면서 유방을 없애버리려고 한것도 범증이다. 그러나 범증은 유방 제거에 실패하면서 항우의 몰락을 예견하다.

결국 변방의 요새인 스촨지역으로 물러나 몰래 힘을 키운 유방은 최고의 전략가 장량, 명장 한신 등 뛰어난 참모들을 앞세워 마침내 항우를 무너뜨린다.

해하에서 최후를 맞은 항우는 초나라 땅으로 탈출해서 뒷일을 도모할 수 있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는지 우회와 오추마에게 작별을 고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중국의 경극 '패왕별희'의 중심 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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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가 좀 흘렀지만, 왕이 외교부장이 이 고사를 굳이 인용하면서 강조하고 싶었던 속뜻은 아마도 '최후의 승자'는 유방이었다는 것인지 모른다. 항우의 장수 항장의 칼끝이 '사드' 로 표현됐다면 당연히 그 대척점에 있는 것은 유방, 즉 '중국'을 의미한다.

상황을 대입해보자면, 지금 글로벌 패권을 다투는 G2의 기세가 남중국해에서 맹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조성되고 있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결국은 자신들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의미가 된다.

초-한의 쟁패로부터 2500년 후, 중국 대륙에는 이와 매우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다. 중국 국민당의 장개석과 공산당의 모택동이 격돌한다.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장개석의 국민당 군은 게릴라 수준의 빈약한 전력을 가진 공산당군을 섬멸하는데 실패한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 그 유명한 장정(長征)이다. 대장정이라고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 홍군(紅軍)이 국민당군의 포위망을 뚫고 9600km의 거리를 걸어서 옌안으로 탈출, 반격의 실마리를 찾고 끝내 역전에 성공한다.


과민한 해석일 수 있지만, 홍문의 연회를 언급했다면 중국이 '사드 문제'에 있어서는 비교적 긴 시간을 가지고 압박에 나설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을 해볼 수 있다.

현재까지는 환구시보를 비롯한 여론전을 통해 압박을 하고 있지만 점차 그 수위를 높여갈 것이란 게 중국 관련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예상이다.

민간부문에서의 '반한류'기류가 형성되는 수준이다. 무역및 통상분야에서의 압박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인증과 관련 삼성SDI, LG화학 등 국내 관련 업체들이 앞으로도 불이익을 받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지만 이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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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정부의 사드 배치가 예정대로 보다 구체화되면 중국도 좀 더 강한 수단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

어쨌거나 외교의 본질은 국익이다. 중국과의 수교이후 지금까지 20여년의 훌쩍 넘는 시간동안 경제부문에서 대 중국 비중은 엄청나게 커졌다. 교역규모로 치면 이미 미국과 EU에 앞선 1위다. IT뿐만 아니라 자동차 등 우리 나라의 주력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려면 중국 시장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안보와 경제적 실리,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슬기로운 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박기록 기자>rock@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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