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타자 이승엽의 방망이가 순간 대구 구장의 밤하늘을 순식간에 갈랐다. 3회말 1사 2, 3루에서 터진 이승엽의 3점 홈런. 결국 이 경기에서 삼성라이온즈는 넥센히어로즈를 꺽었다. 1년전인 지난해 6월25일, 한여름밤 대구 구장의 풍경이다. 이날 게임은 약 5개월간 520게임이 펼쳐지는 국내 프로야구의 한 경기에 불과했다.하지만 이승엽 선수의 홈런은 그 다음날 삼성그룹 기자실은 물론 국내 주식 시장, 경제계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이건희 회장이 이승엽의 홈런에 눈을 번쩍떴다' 한달전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 회장이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매체가 기다렸다는 듯이 섹시한(?) 제목을 뽑았기 때문이다.더구나 이 때는 이회장의 사망설까지 나돌던 흉흉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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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기자실에선 이 회장의 상태가 어떤지 궁금증이 더 커졌다. '도대체 이 회장의 상태가 얼마나 위중하길래 이승엽의 홈런에 눈을 떴다고 하느냐'며 기사를 어떻게 써야할지 난감한 기류가 흘렀다. 당시 삼성그룹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는 '눈을 번쩍 뜬 것은 아니고, 미동이라고 표현할 만큼 살짝 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고 전했다. 물론 이후에도 이 회장의 건강상태를 놓고 시장의 억측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삼성SDS의 상장을 비롯해 제일모직의 상장 등 굵직 굵직한 삼성그룹 경영승계와 관련한 현안들이 쏟아졌고, 이 때마다 이 회장의 건강상태와 관련한 민망한 추측들은 여과없이 나돌았다. '경영승계때문에 삼성쪽에서 정확한 상황을 알리지 못하는 피치못할 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그리고 6월2일, 이승엽의 '그 홈런'으로부터 약 1년쯤 뒤, 한 장의 사진으로 시장은 또 다시 술렁거렸다. 삼성서울병원 VIP병실에 누워있는 이 회장의 모습을 한 매체가 공개한 것이다. 흐릿하지만 사진상으로보면 이 회장은 인공호흡기가 아닌 자가 호흡이 가능한 상황임을 말해준다. 이 회장의 건강 상태가 치명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케한다.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이건희 리스크의 해소'로 이날 시장에선 안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날 코스피가 메르스 공포로 전일대비 20포인트 이상 떨어지는 약세 속에서, 특히 대형주들의 약세가 두드러진 상황에서도 삼성전자의 주가는 1.4%이상 강세를 보였다. 삼성SDS 주가도 동시에 강세를 보였다.요즘 이승엽 선수는 국내 프로야구 전인미답의 400홈런에 도전하고 있다. 우리 나이로 불혹, 야구선수로는 환갑이 훌쩍 지난 나이지만 정교한 배트의 괘적은 여전하다. 아마도 롯데와의 3연전이 진행되고 있는 포항 시리즈에서 400홈런이 달성될 가능성이 높다. 과도한 의미부여, 작위적인 스토리텔링은 지양해야겠지만 '야구'가 삼성, 그리고 이건희 회장에게 특별한 무엇인가가 되고 있다. 어제 한 장의 사진은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다'는 요기 베라의 명언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한 번쯤 음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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