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북 당국자 회담이 최종 결렬됐을때 가장 인상깊었던 워딩은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였습니다. 지금까지‘형식 보다는 실질(내용)이 중요하다’는 사고를 너무 관성적으로하지 않았나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죠.

삼성SDS가 국내 공공, 금융 SI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가장 먼저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대형 IT서비스업체들이 한목소리로 해외 IT시장 확대를 지향하고 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기존 국내 시장에서 스스로 선뜻 발을 빼기란 쉽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일주일간,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만나본 IT서비스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사는 단연 삼성SDS의 놀라운 행보였습니다.

아울러 그들은 그동안 국내 IT서비스 빅3로 한데 묶였던 LG CNS와 SK C&C의 대응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과연 이들도 삼성SDS를 따라 할 것인가?’

다만 LG CNS와 SK C&C는 해외 ICT시장 확대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국내 금융 SI시장에서 손을 떼겠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 두 회사는 삼성SDS의 빈자리로 인해 반사이익을 볼 것이란 전망에 대해서도 “크게 득볼 거 없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이런가운데 IT서비스 업계 일각에선 이번 삼성SDS의 결정이 자발적 의지보다는 대기업의 공공 IT시장 참여 금지와 같은 강력한 시장 규제의 결과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대체적으로 삼성SDS가 국내 대외 SI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알려진 이후 나타난 IT서비스 업계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 입니다. 물론 성SDS가 해외 ICT시장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보다는 삼성SDS의 공백으로 얻게될 수혜 분야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생긴 경쟁의 공백, 그리고 앞으로 그 공백이 제3의 세력에 의해 채워지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제 삼성SDS가 없는 IT서비스 시장 구도의 형성 과정이 흥미롭기는 하겠지만 그 자체가 놀라운 것은 아닙니다.

한번쯤은 시장에 외부충격이 가해지고 그로인해 IT서비스 시장이 새롭게 형성되는 계기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비록 대기업에게 공공 IT시장 진입을 강제로 막아버리는 방법론에는 분명 문제가 있으나 그동안 이렇다할 대책없이 빅 3의 위주의 양극화된 시장 구도로 흘러가던 IT서비스 시장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은 일단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최근 상호출자제한 규정에 걸리지않는 중견기업들은 공공 IT인력을 보충하는 등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물론 사막화를 막기위해 나무를 심고, 인공적으로 물길을 내는 것까지는 도와주겠지만 결국은 중견기업들이 스스로 자생하는 법을 배워야하겠죠. 어쩌면 국내 IT서비스업계가 직면하고 있는 고민은 지금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도 이해안되는 2%” = 이제 관심사는 국내 IT서비스 시장의 역동적인 전개에 맞춰지고 있습니다. 다만 IT서비스 시장의 새로운 질서를 얘기하기에 앞서, 여전히 삼성SDS가 왜 국내 금융 SI사업 철수라는 결정을 했는지 100%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국내 SI(시스템통합)시장이 가진 여전히 중요한 ‘경제적 가치’(?) 때문입니다.

국내 SI시장이 수익성이 없고 경쟁이 매우 심한 레드 오션인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회계적인 관점입니다. 우리 나라가 가진 세계 톱 클래스의 유무선 네트워크 환경 인프라, 다이내믹한 비즈니스 모델의 생성 속도는 여전히 적지않은 무형의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국내 IT서비스 빅3의 해외 ICT진출은 지금까지 국내 공공및 금융 SI시장에서의 성공 모델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전자정부를 포함한 공공프로젝트, ITS(지능형교통체계) 사업등은 국내만큼 좋은 테스트 베드(Test Bed)가 없습니다.

또한 해외 ICT사업으로 전문 인력을 지속적으로 키우고 육성하기위해서는 국내 대외 SI사업을 존속시키는 것이 이치에 부합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삼성SDS의 행보와 관련, 시장이 미처 보지못한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사견이지만 그것은 아마도‘삼성그룹과 삼성SDS’의 새로운 역할 설정이 아닐까 합니다.

◆삼성그룹, 그리고 삼성SDS = 지난해 상반기, 국내 금융권에서는 다소 뜬금없이 삼성 금융계열사들의 SAP기반의 코어뱅킹 도입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삼성화재, 삼성생명, 삼성카드, 삼성증권 등 그룹내 금융계열사들은 SAP기반의 코어뱅킹 플랫폼으로 교체하고, 나아가 글로벌 표준 플랫폼으로 교체한다는 논의였습니다. SAP가 그동안 국내 금융IT 시장에서 보여준 성과에 비하면 좀 이해하기 힘든 소식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금융회사의 특성상 이는 쉽지않은 선택이었고 결국 이 계획은 부분적으로 백지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 금융계열사들을 제외한 삼성그룹내 주요 계열사들은 개별적으로 SAP기반의 ‘S-ERP’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업무 시스템을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으로 묶고, 나아가 글로벌 통합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할 중요한 사실은 어쨌거나 삼성그룹이 전체적으로 표준화된 '글로벌 ERP 플랫폼'도입을 서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삼성SDS는 삼성그룹의 SM(시스템 유지관리)를 맡고 있습니다. '글로벌 삼성’ 전략을 강화하고 있는 삼성그룹으로선 세계 최고의 IT서비스 프로바이더로서 삼성SDS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영업이익만 무려 29조500억원을 거뒀습니다. 삼성SDS의 올해 예상매출액의 5배에 달합니다. 삼성그룹의 입장에서 봤을때 삼성SDS가 해외 ICT 사업에서 당장 몇천억원을 더 벌어들인다고 해서 큰 의미를 부여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다.

그런 점에서 삼성SDS의 행보는 외견상 해외 ICT사업 확대이고 실제로는 삼성그룹의 전체적인 IT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데 향후 몇년간 역량을 집중시키겠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삼성SDS가 향후 그룹 계열사의 연계성을 강조한 ‘스마트 매뉴팩처링’과 ‘스마트 타운' 전략을 강화하겠다는 것도 이런점에서 맥이 닿아보입니다.

따라서 삼성그룹과 삼성SDS간의 새로운 역할 설정의 측면에서 본다면, 삼성SDS는 단순히 그룹의 SM을 지원하는 조직에 머물지않고, 앞으로 그룹의 업무 프로세스 혁신을 주도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맡게될 것이란 생각입니다.

◆IT서비스 회사의 역할이란삼성SDS가 던진 화두 = 시간을 거술러 2000년대 초중반, 당시 IT서비스업계에서는 삼성SDS를 둘러싼 충격적인 소문이 나돈적이 있었습니다.

삼성그룹이 IBM 등 검증된 글로벌 IT업체들에게 삼성그룹의 SM을 맡기기 위해 외부 업체에 컨설팅까지 진행했다는 것이죠. 어쨌든 당시에는 삼성그룹의 원하는 눈높이 만큼 삼성SDS가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 시장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현재 국내 IT서비스업체들은 대부분 모기업의 SM 물량을 기반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IT서비스업체들은 모기업 SM 물량에만 의존하지 않고 대외 사업을 확장하는데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모 기업 SM 비중이 높으면 모기업 물량에 안주한다는 핀잔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번쯤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그룹 전체의 기업경쟁력의 관점에서 봤을 때, 고품질의 SM서비스가 가져다주는 경제적 효과는 지금까지 제대로 부각된 적이 없었습니다.

약간은 다른 얘기지만, 국내 금융권의 경우 IT자회사를 통해 그룹내 IT역량을 한곳에 집중시키기 위한 IT세어드 서비스센터(SSC)전략을 수년전부터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금융 IT자회사들은 IT 외부 사업 확대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룹 IT역량 강화가 가장 우선해야할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넓게보면 SM이 사실은 기업(그룹) 경쟁력에서 훨씬 더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은 아니겠으나 이제는 한번쯤은 뒤집어서 생각해 볼 여유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특히 모바일 중심, 빅데이터 중심으로 기업의 업무환경이 더욱 더 변화하고 있고, IT 의존성은 더욱 확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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