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는 장사는 하지않는 것’이 기업에겐 원칙이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특히 IT시장에서 규모가 작은 보안업계에서는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사업을 따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이는 구축사례(레퍼런스)가 가지는 힘 때문이다. 새로운 솔루션이나 서비스가 나왔을 때, 고객들은 선뜻 이를 도입하지 못한다. 이것이 도입됐을 때 어떤 효과를 볼 수 있는지, 어떤 이득이 있는지 등을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하나 이상의 구축사례가 존재하고, 그 사례가 매우 훌륭한 평가를 받는다면 후속으로 도입할 고객들이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특히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에서 볼 수 있다.

지난해 모 은행에서 모바일기기관리(MDM) 솔루션을 그룹 전사적으로 도입했다. 제1금융권에서는 처음으로 있는 구축이었기 때문에 나 역시 관심 있게 지켜봤고, 그에 대한 취재와 보도도 했다.

얼마 후 해당 은행에 MDM 솔루션을 구축한 업체 담당자에게 요즘 분위기는 어떠냐고 물어볼 기회가 생겼다.

그 담당자는 “XX은행 수주건이 업계에 소문이 나서 여기저기서 문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은행들이 이를 도입하려고 준비만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XX은행 구축사례가 뜨자마자 견적서를 보내달라는 연락을 해오고 있어요”라고 귀뜸해줬다. 말 그대로 레퍼런스의 효과다.

업계에 영향력이 있는 고객을 시장에서 가장 먼저 확보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반대로 생각하면 첫 레퍼런스를 따내기위해 적자를 감수하는 기업도 어마 어마하게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마중물’처럼 미래를 위한 투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이를 ‘저가수주’라고 부르는데, 업계에서는 썩 반기지 않는 눈치다. 이는 솔루션 가격의 하향평균화를 넘어 유지관리 비용도 낮아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더 저렴하게 구축할 수 있으니 좋지만 업계에서는 매출이 점차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생태계가 된다. 자칫하다간 공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소개했지만 MDM 솔루션은 최근에 등장한 제품이지만, 단가가 매우 낮다. 지난 2010년 특정업체가 공공기관과 기업들에게 저가로 사업을 따내고부터 특정가격 이상으로는 수주가 불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MDM은 인력이 많이 필요한 솔루션이다. 수 십가지의 모바일기기(안드로이드)에서 동작을 보장해야하기 때문에 제품의 개발보다 QA(품질관리)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솔루션 중 하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난 2010년 이후 우후죽순으로 시장에 나왔던 MDM솔루션 중 살아남은 제품은 한손에 꼽는다.

그렇다고 마냥 ‘저가수주’를 하는 업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모 보안업체 영업본부장은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그 기술을 토대로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돈입니다.”라고 말했다.

일리가 있다. 아예 사업을 따내지 못해 한 푼도 벌지 못 할 바에는 차라리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기술개발을 위한 최소한의 매출을 따내자는 것이 ‘저가수주’의 이면이라는 해석이다.

그는 “‘저가수주’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원가를 줄일 수 있다는 능력일 수도 있습니다. A, B 각기 다른회사에서 같은 제품을 만드는데, A회사의 가격이 더 낮다면, 그 회사의 기술력이 더 뛰어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반대로 생각한다면 기술력도 없고, 원가를 줄일 수 있는 능력도 없는데 저가수주를 하는 기업은 도태되거나 망하고 말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사실 ‘저가수주’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서로 경쟁하며 우수한 기술력을 확보, 국내를 넘어 해외로 진출하겠다는 꿈을 가진다면 저가수주에 대한 고민은 사라질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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